“빚진 마음으로!”(2019.11.14.목.전병욱 컬럼)

              

  이스라엘, 한국은 모두 체면 사회다.

높은 지위, 영향력있는 사람은 결코 “뛰지 않는다.”

어떤 그룹에서 제일 빠르게 걷는 사람이 낮은 “방자같은 사람”이다.

가장 느리게 걷는 사람이 높은 지위의 사람일 것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부자인 것 같다. 종도 많고, 잡을 송아지도 많다.

꽤 높은 지위의 사람인 듯하다.

근데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뛴다.”(running father) 타인의 시선, 다른 목적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아들만” 보인다. 사랑은 뛰게 한다. 

                   

  14번째 네팔선교 중이다. 60명 정도되는 성도가 150명의 네팔청년들과 함께 “바이블 캠프”를 했다.

섬기는 속도가 빠르다.   

“주의 일을 위하여 민첩하게 하소서.”(찬213)

왜 매년 1년에 2차례씩 네팔에 와서 전도하고 섬기는가?

모두 넉넉한 경제력도 아니다.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다.

몸이 강건한 것도 아니다. 왜? 왜? 왜?

                 

  만약 “이타심”으로 한다면 오래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빚진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을 건져주신 은혜, 기회를 다시 주신 감격 등이 있다.

“이타심”으로 하면 오래 못한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면 할수록 “나의 공로”만 쌓인다. 그래서 선행 많이 하고 “자기 자랑”에 빠진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빚진 마음”은 다르다. 이건 갚아도 되고, 갚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다.

꼭 갚아야 한다. 빚진 것 갚았다고 당당하지 않다.

교만하지 않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빚진 사람이 전도하고 섬기면 조용하다. 말이 없다. 

                 

  존 뉴톤은 노예선장이었다. 타락의 바닥까지 간 사람이다.

그가 건짐 받았다. 구원 이후 빚진 마음이 짓누른다.

그의 불타는 헌신은 빚진 마음에서 나왔다.

바울도 핍박자였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낮은 마음으로 일한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10살 정도 되는 어린 존 이야기다. 그냥 “리틀 존”(little John)이라고 하자.

학교에서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 수업을 했다.

개미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해서 먹을 것을 저축했다. 반면 베짱이는 놀다가 아무 준비없이 겨울을 맞게 되었다.

숙제는 이것이다. “그 후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남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숙제였다.

다음날 숙제를 보니 대개 2그룹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개미는 준비된 걸로 행복하게 살았다. 베짱이는 굶어 죽었다.”

또는 “개미가 나누어줘서 베짱이도 죽지 않고 살았다. 베짱이는 고맙다고 눈물 흘렸다.”

이타심으로 자선 베푼 정도의 결말도 꽤 있었다.

               

  근데 리틀 존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개미는 베짱이에게 다 주고, 자기는 굶어 죽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믿지 않는 선생님은 이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불러다가 “이상한 아이”라고 염려하는 상담을 했다.

어머니의 설명은 그가 십자가를 체험했다는 말이었다.

             

  리틀 존은 복음을 듣고 어린 마음에도 “빚진 마음”이 든 것이다.

그래서 받은 엄청난 은혜를 갚을 길만 찾고 있었다.

그때 개미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을 개미와 동일시하고 다 주고 죽는다는 결말을 낸 것이다.

“복음은 원래 말이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신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거부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2:6-8) 이게 십자가다.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 안되는 은혜를 받고, 말이 안되는 일들을 하면서 네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다. 그래서 가슴에서 뜨거움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발걸음의 속도가 빨라진다.

왜 그 속에서 뭔가 다른 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그들 속에서 세상을 향한 빚진 마음이 보인다.

빚진 마음 가지고, 빚진 자로 살자.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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