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되라의 의미”(2019.10.7.월.전병욱 컬럼)

                      

  “소금 되라”는 말씀을 들으면 다 다르게 느낀다.

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 메시지보다는 소금의 특성에 관한 일반 상식으로 이 말씀을 이해한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한다. 그러므로 깨끗하게 살라.

소금은 “맛있게” 한다.

조미료같이 세상에 살맛을 주며 살라. 이렇게 이해하니 메시지가 가볍다.

좋은 영향력 정도로 쉽게 생각한다.

소금되라는 메시지가 받아들이기에 부담없는 메시지가 된다.

과연 그런가?

                  

  “세상의 소금 되라”는 말씀 앞에 “예수님을 위해 욕먹고 핍박받는 자의 모습”이 나온다.(마5:11)

대개 이 말씀을 8번째 복과 연결시켜서 해석하곤 한다.

근데 이 말씀은 뒤의 말씀과 연결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박해와 소금이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 “박해와 소금”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소금은 “제사”와 연관이 있다.

소제에는 소금이 필수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소금 치라’, ‘언약의 소금’, ‘소금을 드리라’ 등 소금이 1절에서 무려 3번이나 나온다.

왜 제물에 소금을 치는가? 소금의 “변함없음”때문이다.

소금은 녹든지, 얼든지, 끓이든지 특성이 바뀌지 않는다.

“소금 = 변함없음”이라는 이 공식을 잊지 말자.

그래서 변함 없는 언약을 “소금 언약”(민18:19)이라 했다.

결혼에서 굳은 언약을 표시하는 것으로 “소금 친 고기”를 부부가 같이 먹었다.

그러므로 소금 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욕먹고 박해를 당해도 변함없는 자가 되라”는 뜻이다. 

                      

  변함없는 소금되려면, 자기 부인과 십자가 지는 것이 필요하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즉 “소금 되라”는 “십자가 지라”와 같은 뜻이다.
내가 살려고 하니까 변질된다. 십자가 지는 인생은 결코 변질되지 않는다.
번제는 100% 헌신을 의미한다. 번제 드릴 때 반드시 소금을 뿌렸다.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겔 43:24)

번제물은 불소금에 절여야 한다.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100% 헌신이다.

불과 소금, 이것은 변함없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를 진다는 뜻이다.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그후에는 심판이 있다.

소금된 사람은 지옥의 형벌을 이기고 승리한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9:47-50)

길지 않은 인생이다. 70년 기준으로 살지 말라.

영원을 기준으로 살라. 잠시 쾌락을 영원 구원과 맞바꾸지 말라.

머뭇거리지 말고 십자가 지라.

이땅에서 소금 되어서 끝까지 순종하자.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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