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2019.10.4.금.전병욱 컬럼)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다. 

특이점은 “장소”와 “성막에는 없던 것”을 세운 것이다. 

              

<1> 바른 터 위에 세우라.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대하 3:1)

            

 성전 터는 창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한 장소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래도 신뢰하는 믿음으로  즉시 순종한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다. 이는 구약의 예수님이다.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고, 수풀에 걸린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한다. 

아들 대신 양이 죽은 것이다.  

모리아 산은 “하나님이 만나 주신 곳”이다. 

“하나님이 돌이키신 곳”이다.

          

  다윗 말년 인구조사를 한다. 그의 교만 때문이다. 

징벌로 7만명이 죽는다. 이 징벌이 언제 멈추나?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번제 드릴 때이다. 

죄가 있는 곳이다. 근데 제사 드릴 때, 하나님이 돌이키셨다.

 바로 이 장소에 성전을 지은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만나는 곳”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구원의 장소이다.” 

나중에 이 자리에 십자가가 섰다. “다른 터”는 없다. 

성전은 오직 십자가의 터,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죄문제, 구원 문제, 회복 문제, 승리의 길, 이기는 무기 등이 있다. 

이 문제를 푸는 다른 터는 없다. 

오직 십자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 

예수님의 터 위에 서야 교회다. 

예수님 터 위에 서야 승리가 있다. 

거기에만 구원이 있다. 

       

<2> 성막에는 없는 것 =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성전 앞에 두 기둥이 있었다. 

원래 기둥의 효용은? 지탱과 하중을 견디는 것이다. 

근데 성전 기둥은 앞에 있다. 무게 지탱이 목적이 아니다. 

이건 메시지다. 오른쪽을 야긴, 왼쪽을 보아스라 불렀다. 

야긴은 “그가 세우신다.”(He establishes)라는 뜻이다. 

보아스는 “그 안에 능력이 있다.”(In Him is strength.)라는 뜻이다.

          

  교회 들어올 때마다 “야긴의 하나님”을 외쳐야 한다. 

그가 세우신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은밀한 일”이다.

 은밀한 일은 내가 못할 일이다. 

교회는 내가 못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세우신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믿게 만드는 일은 내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하실 때,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다. 

                

  살다보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능력이 필요하다. 

돈이 힘인 줄 안다. 말과 병거가 힘인 줄 안다. 

아니다. 하나님이 능력이다. “은과 금이 없다”고 한다. 

세상 힘이 힘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힘이다. 

예수 이름이 능력이다. 

이게 보아스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성전의 기둥 같은 교회였다. 

하나님이 새 이름을 새겨주실 기둥이었다. 

왜? 항상 “열린 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갇히지 않았다. 

자기 재단으로 미리 결정하고 살지 않았다. 

부르심에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응답하며 살았다. 

객관적으로 그들은 “작은 능력”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씀을 지키고, 배신하지 않았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8)  

이런 사람들을 교회의 기둥 삼으신다. 

기둥같은 성도 되자. 

하나님이 세우심을 믿는 야긴의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보아스의 사람이 되자. 

교회는 야긴과 보아스로 점점 강건해져 갈 것이다.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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