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약한 자의 합리화인가?”(2019.9.30.월.전병욱 컬럼)

              

  “원수를 용서하라.” 이게 현실적으로 되냐고 묻는다. 

악을 이기는 길은 “더 악”으로 대응하는 길 뿐이다. 

그래야 공포심 때문에 더 이상 악을 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일벌백계 논리다. 그럼 왜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는가? 

“약한 자는 어차피 복수할 힘도 없다. 

그래서 스스로 용서한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용서는 노예의 윤리다.” 

니체의 말이다. 과연 그런가? 

            

  용서는 결코 약자의 합리화가 아니다. 

“사랑은 오래참는다.”(고전13:4) 

여기서의 사랑은 “아가페”이고, 

오래참음은 “마크로투메오”이다.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는 대충 알겠다. 

그럼 오래참음의 “마크로투메오”는 뭔가? 

이건 약한 자가 참는 것이 아니다. 

고난, 핍박을 참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강한 자가 쓰는 단어다.  

어떤 왕에게 1만 달란트 빚진 종이 있었다. 그가 외친다.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마 18:26)

 “내게 참으소서” 이게 “마크로투메오”다. 

약한 종이 참는 게 아니다.  강한 자인 왕이 참는 것이다. 

빚 못 갚는 종을 왕이 참는 것이다. 

“오래참음”은 약한 자가 버티는 것이 아니다. 

강한 자가 복수하지 않고 참는 것이다. 

약한 자의 합리화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 그래서 강한 자가 되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용서”다. 

모든 힘을 동원해서 “용서”하는 일을 해야한다. 

주기도문을 보라. 후반부 사람에게 행할 일 첫째가 “용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할 때 용서다. 받는 자는 은혜다. 

은혜가 임하면 믿는 자가 생긴다. 믿는 자가 모인 곳이 교회다.

 용서해야 교회가 세워진다. 용서해야 부흥이 일어난다. 

왜 부흥이 사라졌는가? 용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타 공인하는 죄인인 삭개오를 “먼저 용서”했다.

집에서 같이 먹자고 하신다. 용서, 용납하셨다는 뜻이다.

이때 은혜가 흐른다. 사람은 은혜 받으면 변화된다.

삭개오가 회심하게 된다. 예수님이 이때 구원을 선언한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눅19:9) 명심하라.

용서해야 믿는 자가 나온다. 용서해야 교회가 세워진다. 

 

  중동에 1년동안 풀타임 선교를 떠난 청년이 있었다. 

1년 열심히 사역했지만, 회심자가 단 1명도 없었다. 

“이슬람 선교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근데 몇몇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었다. 

누구를 통해서? 가정부로 온 “필리핀 사람”이나

 아프리카 “에리트리아 사람”을 통해서는 믿는 자가 나온 것이다. 

왜? 이들은 가정부로 와서 온갖 학대를 당한다. 

무시 당하고, 핍박 당한다. 

근데 매순간 그 집 주인을 용서하고, 사랑한다. 

이것이 반복되니 완악한 주인도 용서를 통해서 은혜를 느낀다.

 그리고 변화된다. 그 청년이 말한다.

 왜 부유한 선교사가 가면 회심자를 못 얻는가? 

어려움 당할 때, 용서하고 사랑하는 체험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용서 없는 곳에 부흥도 없다. 

          

  언제 한국교회 부흥이 절정이었나? 

아들 2명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아들로 삼았던 

손양원 목사님 때이다. 사랑과 용서가 실제로 일어났다. 

은혜의 강이 흐르게 되었다. 

결국 여기저기서 믿는 자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다시 부흥을 맛보고 싶은가? 용서하라. 원수를 용서하라. 

온 힘 다해 용서하라. 거기에 생명이 싹튼다. 

거기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다시금 부흥을 보고 싶다.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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