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가 아닌 나”(2019.5.1.수.전병욱 컬럼)

                

  야곱은 “내가 싫다.” 에서가 좋다.

 자기 정체성은 “나는 에서가 아니다”이다. 

자신을 자꾸 감추려 한다. 

에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장자, 사냥꾼, 멋진 몸의 털... 엄마가 아버지 속이라 했을 때, 

야곱은 “아버지가 나를 만지실진대”(창27:12)라 말한다. 

어떻게 알았을까?

항상 멀리서 아버지 이삭이 에서의 털을 만지는 것을 부러운 듯 바라봤었다.

그래서 아는 것이다. 

아버지 만나서 자기 소개를 이렇게 한다.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27:19) 

“맏아들 에서”라니... 누가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나? 

“나는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지 마음 속 넘버원 에서입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에서입니다.” 그런 뜻이다. 마음 아프다.

                     

  “소속”되는 것과 “끼는” 것은 다르다.  

소속은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끼는 것은 남의 흉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가난한 잭이 나온다. 

남의 옷 빌려 입고, 상류층 파티에 참석한다. 

소속이 아니라 흉내로 낀 것이다. 불안, 어색, 답답하다. 

흉내는 내 것이 아니라서 힘들고 오래 못간다. 

신앙도 척하면서 할 수 있다. 

기도하는 척, 신앙 좋은 척... 약함을 감추고, 자기를 감추면서 이럴 수 있다. 누적되면 무너진다. 

                 

  야곱은 약함을 숨겼다. 약하면 안된다고 다짐했다. 

자수성가로 나름 성공한다. 그러다가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서기를 거절한다. 결국 환도뼈가 박살난다. 

더 약해진 것이다. 약함 숨기고 강한 척하는 자기를 포기한다. 

드디어 하나님의 축복을 구한다.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이름이 바뀐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축복 구하는 자가 승리자란 뜻이다. 

약함 가리고, 자꾸 에서되려고 하지 말라. 

약한 야곱으로 서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라. 

그게 승리하는 삶이다. 

               

  더 약해진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난다. 

400명의 병사를 데리고 나와 죽이려했던 에서다. 

에서는 야곱보고 뛰어온다. 야곱은 환도뼈가 박살나서 뛸 수 없다. 

에서는 야곱의 목을 안고 운다.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마 다리 저는 모습이 측은해서 그랬을  것이다. 

야곱이 강한 척 할 때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더 약해졌을 때, 쉽게 풀린다. 

약해도 축복이 임한 자는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축복만 있다면 약한 게 나쁜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어른되면 약함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어른된다는 것은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15세는 “지학”(학문에 뜻을 둠), 30세는 “이립”(뜻이 굳건해짐), 

40세는 “불혹”(유혹이 없음), 50세는 “지천명”(천명을 안다), 

60세는 “이순”(무슨 말을 들어도 용납)  그 나이가 되면 이렇다가 아니다. 정반대다. 

인간은 너무 약하기에 이렇게 될 수 없다. 

이렇게 되도록 발바둥치라는 말이다. 40세가 불혹인가? 아니다. 

엄청 유혹이 많다. 그걸 이기도록 엎드려 축복을 구하라는 뜻이다.

 50세는 몸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천명을 구하면서 조신하게 살라는 뜻이다. 

60세 넘어서서 무슨 말듣고 펄펄 뛰면 민망하다.

무슨 말을 들어도 허허 웃으면서 넘기라는 뜻이다.

이게 되나? 안되니까, 축복을 구하며 이렇게 살라는 뜻이다. 

                

  남이 되려고 흉내내지 말라. 에서가 아닌 나로 살지 말라. 

약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나로 서라. 그리고 약한 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라. 

그게 하나님 백성이다. 그게 크리스천이다. 그게 이스라엘이다. 

약하지만, 하나님 때문에 영광스럽게 된  그런 많은 야곱을 보기를 기대한다.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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