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지 않는 것이 최선”(2019.2.6.수.전병욱 컬럼)

 

  자기 부인이 왜 중요한가? 나를 무시, 나를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하신다.

힘 주기가 아니라 힘 빼기다. “힘 빼기의 지혜”를 배우라. 

 

  열심, 충성, 최선, 노력... 이건 처음 바울의 모습이다.

근데 바울은 이상한 체험을 한다. 도저히 이해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

성령이 선교를 금하신 것이다. 전도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성령은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지 못하게” 하신다.

“비두니아에 가지 못하게 예수의 영이 막는다.”(행16:7)

땅끝까지 전하라는 성령의 명령과 충돌하는 것 같다.

그리고 방향을 바꾸어 유럽으로 가라 하신다. 그게 하나님이 인도하는 승리의 길이었다.

바울은 노력의 사람이다. 그런데 여기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최선임을 보여준다.

내 힘으로 안된다. 내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런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자기 부인이 안된 사람은 외부의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나님의 “강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동시에 인간의 “연약”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건 동전의 양면이다. 믿음의 본질은 받아들임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믿는 자 = 영접하는 자이다. 

 

  강한 자아의 사람은 자기가 남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매에게 때리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언젠가 보니 배에 멍이 있었다. 몰래 클럽 갔다고 남친이 때렸단다.

“가끔 때리지만, 그것 빼곤 다 좋아요.” “내가 잘하면 잘될 거예요.”

아니다. 그건 아니다. 이후 종종 팔목, 목에도 멍이 든 걸 보게 된다.

이 자매는 자아가 강하니 “고치는 것에 집착”한다. 자기 힘으로 사람 못 고친다.

사람은 잘 변화되지 않는다. “그것 빼곤 괜찮아”라고 말하면 안된다.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지는 것일 수 있다. 

 

  우선 “약점이 객관적으로 어느 수준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 놈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준인가?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변화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감수하실 수 있습니까? 어머니..” 스카이캐슬 김주영 선생의 대사에 응답해야 한다.

변화는 거의 안된다. 감수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변화 추구가 아니라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왜?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아의 사람은 사람의 “연약”을 못 받아들인다.

동시에 하나님의 “강력”도 못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섭리, 능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고집 부린다.

사람 변화시키겠다고 고집 부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 잘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죽지 않은 자아가 그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죽어야 한다. 그

래야 하나님의 강력과 인간의 연약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다.  

 

  바울은 엄청난 집념의 사람이었다. 노력하는 것이라면 둘째 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근데 하나님은 내려놓으라 하신다. 노력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하신다.

섭리와 뜻을 받아들이라 하신다. 드로아에서의 이런 “꺽임”이 그의 유럽 선교를 가능케 했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변화는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

영접하라. 받아들이라. 인생은 수동태다. 감수하고 가는 것이다.

내 길보다 더 높은 길이 있다. 내 생각보다 더 높은 생각이 있다. 영접하는 자만이 그 길을 간다.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 수준으로 살아간다. 까다롭게 내치는 인생 되지 말라.

하나님도 영접하고, 사람의 연약함도 영접하라. 그게 믿음의 길이다. 그게 잘 사는 길이다.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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