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what)을 붙들라. 어떻게(how)는 2차, 3차 문제다.”(2017.1.7.토.전병욱 컬럼)

  “대통령의 글쓰기”를 보면, “무엇을”이 “어떻게”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무엇을” 알면, 표현 방법이 서툴러도 전달된다. 어학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전할 지를 알면, 명사만 던져도 전달된다. 미숙한 사랑도 “무엇을”이 확실하기에 서툴더라도 본심이 전달된다. 문제는 “무엇을” 전달할지 모르는 데 있다. 어떤 때는 거짓말한다. 원하는 것과 말을 다르게 한다. 그러니 전달될 리 없다.

  성경 본문에서 “무엇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전달하는 “어떻게”는 2차, 3차 문제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으로 전하지 않겠다”는 바울의 말이 이 뜻이다. “어떻게”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달리심이 바울의 “무엇”이었다.(고전2:1-2) 그러니 흔들리지 않는다.

  판세를 바꾸는 힘은 “기도”에 있다. 교회는 세상이 갖지 못하는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걸 붙들어야 한다. “은과 금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있다. 이게 흔들지지 않으면 된다. 

  2차대전 때 일이다. 독일군 비행기 200대가 런던 상공에 떴다. 영국이 지닌 비행기는 10대 뿐이다. 런던은 초토화 위험에 처했다. 비록 10대지만, 앉아서 당할 수 없어, 10대의 비행기가 떴다. 근데 200대의 독일 비행기가 돌아서서 도망친다. 얼떨결에 위기를 넘겼다. 왜?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잡힌 포로가 말했다. 런던 상공에 들어서니, 500-1000대의 영국기가 뜨길래 승산이 없어서 돌아왔다고! 그리고 공습하던 독일비행사의 마음 가운데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고!이건 무슨 말? 

  영국은 저항할 힘이 없었다. 런던 타워에서 저녁 9시에 종을 치면, 광장에 모여서 사람들이 악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하는 9시가 되면 독일 비행사들에게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그들의 눈에는 10대가 500-1000대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나타났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일을 한다. 기도하면 내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서 이긴다. 

  “어떻게”는 “무엇”이 확실하면 나오는 것이다. 방법을 모른다. “지혜”는 푸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때마다 지혜 주신다. 과제가 위대하다고 힘도 있는 것이 아니다. 풀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  “지혜와 능력”이  푸는 힘이다. 이건 그때 그때 다르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핍박받으며 믿는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엄명한다. “내일은 교회가지 말아라. 밀린 추수 다 해야 한다.” 그냥 핍박이라 무시하고 예배 갈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을 무시하고 무례한 것도 바른 자세는 아니다. 딜레마다. 사는 게 원래 딜레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다. 지혜가 떠 올랐다. “푸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친구 3명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밤새 맡겨진 분량의 추수를 마쳤다. 아침이 되어 아버지께 갔다. “말씀대로 마쳤다. 이제 교회 가겠습니다.” 아들 손을 보니 퉁퉁 부어 있었다. 베인 곳의 핏자국도 있었다. 밤을 지샌 초췌한 얼굴이 보였다. 눈물 흘리는 아버지가 말했다. “이게 니가 믿는 예수냐? 나도 믿고 싶다.”

  이건 반복 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혜로 풀린 일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매 사안마다 이런 지혜와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성도는 기도로 산다. 

  인생은 “정답”으로 사는 게 아니다. “기도”로 산다. 판세를 바꾸는 “무엇”이 “기도”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놓고, 지혜와 능력을 구한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기도”다. 성경은 이것을 주로 “간구”로 묘사한다. 내가 목숨  걸 “무엇을” 붙들라. “무엇”이 있는 인생은 미숙하던 성숙하던 반드시 승리한다.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조회 수
공지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해서, 기도를 거절하신다.”(2018.4.18.수.전병욱 컬럼) 708
공지 “신앙은 결코 강요로 생기는 게 아니다.”(2018.4.12.목.전병욱 컬럼) 2368
공지 “뭐가 그리 억울한가? 의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2018.4.11.수.전병욱 컬럼) 2698
공지 “이해 안 되어도 순종하라.”(2018.4.5.목.전병욱 컬럼) 2979
공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왜 자꾸 섭섭해 지는가?”(2018.4.4.수.전병욱 컬럼) 2671
공지 “당장, 당장, 당장하라.[Do it right now.]”(2018.3.29.목.전병욱 컬럼) 5403
공지 “져야 이기는 싸움”(2018.3.26.월.전병욱 컬럼) 3240
공지 “작은 능력(little strength)을 가지고 있습니까?”(2018.3.21.수.전병욱 컬럼) 3218
공지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을 가져도 되나요?”(2018.3.20.화.전병욱 컬럼) 2708
공지 “못 믿겠어? 믿는 방법을 가르쳐 주마!”(2018.3.13.화.전병욱 컬럼) 4898
공지 “오마카세가 주는 특별한 경험”(2018.3.9.금.전병욱 컬럼) 4193
공지 “사는 게 피곤한가?”(2018.3.6.화.전병욱 컬럼) 3919
공지 “양을 이리 속으로 보내는 이유”(2018.3.5.월.전병욱 컬럼) 3145
공지 “믿으면 무슨 죄를 지어도 다 되나?”(2018.3.1.목.전병욱 컬럼) 4848
공지 불가능한 것을 놓고 기도하라.”(2018.2.26.월.전병욱 컬럼) 3983
공지 “굳이 천사를 동원해 옥문을 연 이유”(2018.2.22.목.전병욱 컬럼) 4118
공지 “믿음의 사실과 느낌이 일치하려면?”(2018.2.17.토.전병욱 컬럼) 4351
공지 “어려움 감수하면 깊어진다.”(2018.2.13.화.전병욱 컬럼) 4918
공지 “왜 기브온이 아닌 헤브론인가?”(2018.2.8.목.전병욱 컬럼)   4967
공지 “당장 이렇게 살라!”(2018.2.3.토.전병욱 컬럼) 6286
공지 “자기보다 잘난 부하 다루는 능력”(2018.2.1.목.전병욱 컬럼) 5727
318 사랑은 긴 고통(long suffering)"(2016.5.19.목.전병욱 컬럼) 2887
317 남자의 침묵"(2016.9.6.화.전병욱 컬럼) 3229
316 “희생이 나쁜 게 아니다. 내게만 주어진 기회다.”(2017.7.4.화.전병욱 컬럼) 6399
315 “훌륭해 보이는 악!”(2017.12.14.목.전병욱 컬럼) 7402
314 “혼자가 아니란 느낌”(2017.11.8.수.전병욱 컬럼) 4686
313 “헌신없는 자존심은 위험하다.”(2017.1.12.목.전병욱 컬럼) 4984
312 “허밍버드(Hummingbird)와 알바트로스(Albatross)” (2014.2.28 전병욱 목사) 17664
311 “해감의 기다림, 낯설게 하기”(2017.10.13.금.전병욱 컬럼) 5177
310 “합리화에서 원망이 나온다.”(2017.11.14.화.전병욱 컬럼) 5785
309 “하찮은 자리는 없다. 지금 그 자리를 존귀케 만들라.”(2017.2.17.금.전병욱 컬럼) 4434
308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말의 의미”(2017.11.9.목.전병욱 컬럼) 6310
307 “하나님이 스님도 굶기지 않는다.”(2016.3.8.화. 전병욱 목사) 2191
306 “하나님 반대편에 서지 말라. 통째로 받아들이라.”(2017.5.13.토.전병욱 컬럼) 5399
305 “필요로 살면, 사는 게 쉽다.”(2017.3.20.월.전병욱 컬럼) 4300
304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2017.10.4.수.전병욱 컬럼)   7285
303 “풍년만 있는 인생은 없다.”(2017.9.29.금.전병욱 컬럼) 5067
302 “포지션[position]이 깨지는 광야”(2017.11.21.화.전병욱 컬럼) 4464
301 “포지션 바꾸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말라.”(2017.7.31.월.전병욱 컬럼) 5914
300 “편리함과 불편함이 기준이 되지 않게 하라!” (2016.3.2 전병욱 목사) 256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