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배하면서 예배 드려도 되나요?”

2014.3.14 전병욱 칼럼



  똑같은 일도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진다. 목사에게 물었다. “예배 드리는데, 담배, 술을 해도 되나요?” “물론 안 되지요.” 예배와 동시에 경건을 잃은 행동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질문을 바꾸었다. “저는 담배와 술을 끊지 못하는데, 예배 드려도 되나요?” “물론이지요. 하나님은 어떤 조건의 사람, 어떤 죄인이라도 예배하는 사람을 받으세요.”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담배, 술 하면서 예배하는 것은 똑같다. 다만 질문을 통해서 태도가 바꾸었을 뿐이다. 전자는 예배자 임을 당연시하고, 그 다음의 합당하지 않은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후자는 부족함을 전제하고, 죄인임을 전제하고, 예배를 통해서 회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전자를 “율법적 시각”, 후자를 “복음적인 시각”이라고 한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온전한 모습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모든 힘을 기울여서 그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찾아내고 공격한다. 그것을 잘 믿는 행동으로 착각한다. 이것은 바리새주의의 전형이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인간은 약하고 쓰러진 존재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십자가의 용서와 은혜를 구한다. 그것이 예배이다. 이 전제가 있으면, 누구든 용납하고, 품어준다. 그래서 예배를 통한 회복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복음이요 살아있는 예배이다.



  제대로 예배 드리면 영이 살아난다. 그 땅이 살아난다. 예배가 살아나면, “영이 회복”된다. “영이 집중”하게 된다. 지난 주 어떤 회사에서 예배를 드렸다. 짧은 예배였다. 그런데 분열되었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빛이 임하는 것을 모두 느꼈다. 새로운 힘이 주어졌다. 그것이 용납하는 예배의 특징이다.



  예배는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섭리를 묵상하게 한다. 그러면 저절로 감사가 나온다. 이전까지 지켜 주신 과거의 은혜를 기억한다.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이것이 성도의 과거에 대한 고백이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이것이 성도의 현재의 고백이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실 것이다. “여호와 이레” 이것이 성도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감사와 확신, 이것이 예배가 가져다 주는 선물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다양한 자기만의 은사와 영광이 있다. 그것을 모아서 하나되게 하는 것이 예배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시150:3-5) “나팔”은 “쇼파드”라는 말로 제사장이 쓰는 뿔나팔이다. 2개의 음만 있다. 이것은 악기가 아니다. 전쟁과 평화를 알리는 신호이다. 제사장이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보낸다. “비파”는 “네벨”이다. 작은 기타같이 생긴 현악기이다. 영어로는 “lyre”라고 표현한다. “수금”은 “키누르”로 다윗의 악기 “하프”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악기이다. “소고”는 “토프”로 여성 악기이다. 주로 “탬버린”으로 번역된다. “퉁소”는 “우갑”으로 열렬히 사랑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나는 피리이다. 오카리나 비슷한 악기로 생각하면 된다. “제금”은 “첼츨림”으로 “심벌즈”이다. 큰소리를 내는 여러 종류의 심벌즈가 있다.



  사람마다 소리가 다르다. 악기가 다르다. 그런데 전체가 하모니를 이루어 음악을 만들어 낸다. 하나됨을 이룬다. 이것이 예배이다. 바른 예배는 강력한 봉사의 힘을 만들어낸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하모니를 이룸은 아름답다. 이것이 예배의 모습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호흡은 하나님이 주셨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면, 모든 풍성함이 주어진다. 이 모습을 드러내는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기대한다.



전병욱 목사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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