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도구로 고난만 있냐? 상으로도 훈련하신다.”(2018.9.18.화.전병욱 컬럼)
                               
  믿으면 만사형통 아니다. 
은혜 아래 산다는 것은 하나님 간섭 아래 산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훈련시키신다. 힘들다. 눈물난다. 고달프다. 
그래도 다 나를 잘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다. 
그래서 간섭도 좋다. 간섭도 기쁘다. 
근데 한 번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목적이 성장이라면, 고난만 사용하실까? 
잘되는 일이라면 격려와 칭찬을 통해서는 훈련시키지 않을까? 
                 
  성경 도처에 상급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고상한 크리스천은 이걸 그냥 넘겨버린다. 
우아하게 믿는 우리가 상준다고 움직인다는 것이 창피하다는 것이다.

심판은 2종류가 있다. 
믿지 않는 자를 벌주는 심판이다.
 일명 “백보좌 심판”(베마 심판)이다.
 “크고 흰 보좌”에서 행위를 따라 심판하신다. 
지옥의 형벌이 기다린다. 불신자 심판이다.(계20:11-12) 
또 믿는 자의 상급 심판이 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또는 “크리스티 심판”이라 말한다. 
믿는 자에게도 차별적인 상급의 심판이 있다는 말이다.
(고후5:9-10) 
                           
  훈련의 도구로 고난도 쓰시는데, 상급을 안 쓰겠는가? 
당연히 하나님은 상급도 도구로 사용하신다. 
고교 친구가 있었다. 부모님이 10등 안에 들면 
“워크맨”을 사준다고 했다. 상급으로 열심히 공부하도록 
유인한 것이다. 죽어라 공부해서 7등쯤해서 워크맨을 받았다. 
그는 좋아 죽었고, 나는 부러워 죽을 뻔했다. 
난 그때 3등 했었는데, 나의 부모님은 관심도 없었다. 
만약 내게도 그런 상급의 자극이 있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떤 성도가 좋은 성도인가?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이다. 
상 준다면 죽어라 뛰어라. 순진하게 뛰어라. 그게 좋다. 
그리고 실제로 상급도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상급은 단순 동기부여가 아니라 실제라는 뜻이다. 
상준다면 믿고 뛸 때 성장이 있다. 
특새에서 상준다면 빠지지 않고 개근해야 한다. 
나눠주는 파우치보고 시큰둥하면 안된다.
 “내가 애냐, 내가 돈이 없냐? 그런 거 필요없어.” 
그러면서 덤덤하면 자기만 손해다. 
1만원자리 파우치 하나를 받기 위해서 최선 다할 때, 
그때 성장이 온다.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 그걸로 나를 시험해 보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겠다.”(말3:10) 
십일조에 관한 말씀이다. 물론 돈 버는 것이 성도의 목적이란 뜻 아닌 거 안다.

다 안다. 웬만한 성도면 다 안다. 
돈이 어찌 삶의 목적이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예단하며 이 말씀 무시하며 사는 사람이 
좋은 성도일까? 
아닐 것이다. 단순하게, 순진하게 이 말씀 붙들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성장이 있다. 그래야 깊이가 있다. 그래야 실제로 복도 받는다. 
하나님이 그걸 노린 것이다.
               
  참존 화장품의 김광석 회장은 이 원리 붙들고 넘치는 물질 축복 받았다고 한다.

단순하고 순진하게 이 간증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 형제가 있다. 그 형제도 안다. 돈이 목적 아닌 것을!  
근데 철저히 순종하니까, 실제로 폭포수같이 부어 주셨다. 
실제 소득이 100배 이상 증가했다. 
넘치는 물질로 다른 사람 섬기고, 선교 가고, 열매 맺고, 직원들 전도하고, 회사는 날로 날로 번창한다. 
말씀 무시하던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그게 별거냐고 애써 무시하는 초지일관의 사람도 있다. 
맞다. 이건 기독교 핵심 메시지는 아니다. 
그러나 상 준다니까 순진하게 뛴 성도의 아름다운 풍경화로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철야기도 끝나면 빵준다. 빵 받으려고 열심히 기도하라. 
빵으로 시작했지만, 깊은 기도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 기도는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빵이 목적인 성도가 어디 있겠는가? 
매사에 시큰둥하지 말고, 상 받기 위해서 애쓰는 성도가 되라. 
목마름이 매력이다. 의욕이 삶을 시원케 하는 청량제가 된다. 
난 상받기 위해서 죽어라 뛰는 사람이 좋다.  
믿음 가지라. 그리고 하나님이 상주는 분임도 믿으라. 
그러면 생각보다 인생이 강력해 질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전병욱 목사 컬럼

전병욱 목사 컬럼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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